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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깨우는 이 누구인가

로버트 스트롬버그, 말레피센트


Maleficent, 2014, 미국, 97분, 로버트 스트롬버그





 이 영화는 강력한 여성 서사다. 말레피센트에겐 유난히 크고 단단해서  바람의 저항에도 끄떡없는 날개가 있었다. 모든 갈등의 시발점은 그가 인간 남성으로 인해 날개를 잃게 되는 부분이다. 날개의 제거는 미래의 제거이며, 가능성과 자아를 훼손하는 일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왜 말레피센트를 죽이려 했고 날개를 제거했는가'이다. 

 말레피센트는 강력하게 한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오롯이 남성으로만 구성된 군대와 왕을 쉽게 무찌른다. 여성이 전례 없이 강하거나 우위를 차지할 때, 여성은 마녀로 불린다. 인과를 따지지 않고 부정적인 역할로 매도하고 만다. 말레피센트를 마녀로 부르며 죽여야만 할 존재로 만든 이유다. 마녀라 부르기만 하면 죽일 수 있었다. 이는 중세 중기부터 근대 초기까지 일어났던 마녀사냥을 표상한다. 잔인한 폭력 앞에서 훼손당하지 않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분노란 지금껏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라는 

 시선이 존재했다. 그러나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단순히 사적이지만은 않은 영역이다. 분노의 개연성을 살펴본다면 모든 서사에 변곡점이 생긴다.  혹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만 불렸던 이야기가 <<말레피센트>>로 탄생하게 된 이유다. 

"16번째 생일날이 저물기 전에 공주는 물레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죽음과같은 잠에 빠질 것이며 그 잠에서 결코 깨어나지 못하리라. 공주는 죽음의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말레피센트는 자신의 화풀이를 후회한다. 끝내 오로라를 사랑하게 된다. 늘 외롭고 처절했으며 삐뚠 시선을 받으며 살았던 이에게 순수한 오로라의 미소가 스민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견고한 방어벽을 올리느라 말레피센트의 공간은 늘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오로라가 들어서며 놀랍게도 빛이 들기 시작한다. 오로라는 말레피센트를 마녀가 아닌 수호요정이라 불러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감시를 위해 오로라를 지켜보았으나 감시는 관심이 되고 관심은 애정이 된다. 자신이 건 저주를 풀기 위해 애쓰며, 로라를 지키고자 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Sleeping beauty는 (여성이자 훗날 왕비가 될) 공주를 (남성이자 훗날 왕이 될) 왕자의 진정한 사랑이 담긴 키스만으로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비평이 많이 나온 작품이다. 특히 현시대에는 그 서사를 단순 로맨스만으로 이해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원작의 여성은 몹시 수동적이고 성녀와 악녀로 여성을 이분화하고 있으며, 남성만이 여성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말레피센트>에서 오로라는 공주라는 역할보다 오로라로 불리며 확고한 자기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 무엇보다도 오로라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오로라를 깨운 것이 왕자의 키스가 아닌 말레피센트의 키스였다는 게 중요하다. 사랑을 얄팍하게 정의하지 않음과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직접 거두었기 때문이다. 

 말레피센트에게 극한 위기가 왔을 때, 오로라가 말레피센트의 날개를 찾아낸다. 말레피센트에게 다시 날개가 생긴다. 상처 입은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지만 분명 언젠가 회복 가능하다. 극복이라 불러도 좋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말레피센트처럼 우리에게도 있다. 

 오로라는 왕이 된다. 대립했던 두 영역을 오로라와 말레피센트로 인해 화합하게 만든다. 그걸 연대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공주를 깨울 수 있는 이는 마녀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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