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새로운 진부함

데이비드 슬레이드,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Black Mirror: Bandersnatch, 2018, 미국, 90분


시청자에게 선택지를 주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놀랍다. 또한 선택지는 건넸으나 자유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블랙미러:밴더스내치>는 미묘한 가치를 가진다. 이제껏 블랙미러 시리즈의 시간적 배경은 항시 미래였으나 자유의지라는 항목을 시청자에게 건네는 순간, 이 시도의 시간적 배경은 과거가 될 수밖에 없다. 자유의지를 통해 자유의지를 박탈하는 것.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서사를 마주할 때, ‘나라면 저 상황에서 저렇게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가진다. 이렇게 창작품을 바라보는 대중의 반발심리는 당연한 비평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막상 정말 우리에게 선택지를 내밀었을 때, 심지어 정해진 알고리즘이 있을 경우엔 달라진다.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 보기 앞에 서게 될 경우, 그리고 그 보기의 내용이 모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만든 이가 원하는 보기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극도의 스트레스와 위압감을 느낀다. 이럴 거면 차라리 선택을 재촉하지 말라고 반발하게 된다.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자. 반발심리는 대중의 비평적 시선이지만, 창작자가 구성한 창작품의 결정은 견고하다. 즉, 결과적으로 오히려 선택지를 줌으로써 작품을 비평할 수 있는 다양성을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이 그 부분을 드러내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도 자체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나는 거의 모든 결말을 보느라 오랜 시간을 소모했는데, 그 중 마음에 드는 결말은 단 하나였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차라리 내가 죽겠다는 단호한 사고가 나에게 있는데, 그에 부합하는 결말은 단 하나였다. 끊임없이 폭력성을 요구하는 보기 앞에서 나는 몇 차례 선택을 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선택을 했으며 죽임과 죽음이 반복되었다. 가학적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시도는 높이 사지만, 이 영화 자체를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 폭력적인 이미지를 반복해 노출하고 시청자에게 폭력이란 선택지를 주는 것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유해하게 느껴졌다. 이런 (시도의) 플랫폼은 환영하면서도 이러한 (서사의) 플랫폼이 늘어날까 염려되었다. <블랙미러:밴더스내치>의 서사는 단조롭고 폭력적이다.

 결국 모든 것이 컨트롤 되고 있다는 상징이 좋았다. 우리가 처한 세계는 대체로 자유를 준다고 말하고 자유를 통해 억압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유인가. 자유라는 변명은 아닐까.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서나 존재하지만, 대체로 그다지 내키지 않는 협소한 선택지 앞에서 그나마 나은 걸 고른다. 자유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블랙미러에서 시청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선보인다고 했을 때, 정말 설렜다. 아마 나는 다양성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굉장히 길고 고된 작업이 될 텐데 하고 걱정도 했다. 그러한 잔 가지를 모두 쳐냈기 때문에 촬영기간과 러닝타임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서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던 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보고 난 뒤 온몸이 결박 당한 기분이 들었고, 그것이 <블랙미러:밴더스내치>의 목표였으므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결박 당한 입장에서 좋다고 할 순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넷플릭스가 이 시도로 적합하기 짝이 없는 블랙미러를 통해 본격적으로 만들어 보았으니, 다음엔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리란 거다. 내가 이번 블랙미러를 통해 기대하는 건 바로 내가 후에 보게 될 또 다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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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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